이란 대통령이 유엔 연단에서 초등학생들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미국을 향해 “테러리스트는 우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어린이들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란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었다.

그런데 연설 끝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붙었다.

“대화와 외교,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이 적국 땅에서, 피해 사진을 든 채 협상 얘기를 꺼낸 장면이다. 말 그대로 한 연설 안에 전쟁과 협상이 같이 들어 있었다.

📷 사진을 든 건 말보다 빨리 보이기 때문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연설 도중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와 공습으로 숨진 초등학생들의 사진을 들었다.

그는 이란이 공격자가 아니라 공격받은 쪽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지 스스로를 방어했을 뿐이고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미국과 이란은 지금 누가 먼저 공격했고, 누가 더 큰 위협인지부터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문제 삼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를 만들 생각이 없으며, 평화적인 원자력 기술을 쓰려는 것뿐이라고 맞선다.

이란 대통령은 여기서도 이스라엘을 끌어왔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데 왜 이란만 국제 사찰과 제재를 받느냐는 주장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한 학생만 가방 검사를 계속 받는데, 옆 학생 가방은 아예 열어보지도 않는다고 느끼면 “왜 나만 검사하냐”고 따질 수밖에 없다. 이란은 국제사회가 자기에게만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민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 의혹과 역내 무장세력 지원 문제를 들어 전혀 다른 판단을 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누가 더 억울하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가 믿지 않는 상태에서, 핵 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검증할지가 진짜 협상의 숙제다.


🚪 미국 대표단은 나가고, 협상 얘기는 남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란 대통령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겨냥한 비판을 이어가자 미국 대표단 외교관들은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전날에는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 연설 때 이란 대표단이 퇴장했다고 한다.

유엔총회장이 서로 말 안 듣겠다는 사람들로 가득한 교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쪽이 발표하면 다른 쪽이 문을 열고 나간다.

그런데도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에 무릎 꿇지 않겠다”고 강하게 말한 뒤,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덧붙였다.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말과 협상하겠다는 말은, 이란 입장에서는 같이 가야 하는 말일 수 있다.

이란 안에서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과 접촉했다는 인상을 쉽게 줄 수는 없을 거다. 특히 공습 피해와 제재로 국민이 고통을 겪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유엔 연설에서 먼저 “우리가 당한 일”을 길게 보여준 뒤, 마지막에 협상 카드를 꺼낸 듯하다. 협상하더라도 항복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동시에 보내려 한 거다.

🗣️ “협상 준비”라는 말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7월 종전 양해각서가 무효가 된 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다시 표류해 왔다고 한다.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카타르가 중재하는 간접 협의가 다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협상할 준비가 됐다”는 말은 출발선일 뿐이다.

협상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 무엇을 놓고 협상할지

미국은 핵무기 제거를 전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 자체를 부인한다.

시작점부터 서로 다른데, 회의실만 잡는다고 대화가 술술 풀릴 리 없다.

▶ 공격을 멈출지

이란은 공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건 부당하다고 본다. 반대로 미국은 압박이 있어야 이란이 양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압박이 협상을 부르는 게 아니라, 협상할 의지마저 태워버리는 순간도 있다.

▶ 누가 무엇을 확인할지

이란이 정말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지, 미국이 제재를 어느 정도 풀 수 있는지, 이란 주변의 무력 충돌은 어떻게 줄일지까지 얽혀 있다.

이건 악수 한 번 하고 사진 찍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유엔 연단에서 어린이 사진을 든 장면은 강했다.

하지만 그 사진이 협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은 양쪽 다 상대를 향해 가장 날카로운 말을 던지면서도, 문을 완전히 잠그지는 않은 상태다.

문 앞까지는 왔다.

들어갈지는,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