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나면 물 한 병부터 찾는다.

그런데 KAIST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가 42.195km를 달리고도 배터리를 34% 남겼다.

충전도 안 했고, 중간에 배터리를 갈아 끼우지도 않았다.

2024년 11월 상주곶감마라톤에서 라이보2가 기록한 시간은 4시간 19분 52초다. 사람 참가자들과 같은 코스를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 결과와 설계 방법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 로봇개가 오래 달리기 어려운 이유

네 발 로봇은 바퀴 달린 로봇보다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돌밭이나 계단, 산길에서도 움직일 수 있으니 재난 현장 수색이나 공장 점검에 잘 어울린다.

문제는 다리다.

바퀴는 굴러가면 되지만, 네 발 로봇은 가만히 서 있을 때도 관절 모터가 계속 몸을 버텨야 한다. 한 발을 떼고, 앞으로 옮기고, 땅에 다시 디딜 때마다 전기가 빠져나간다.

발을 잘못 디디면 충격이 생기고 미끄러진다.

사람으로 치면 마라톤 내내 발을 질질 끌고 뛰는 셈이다. 당연히 금방 지친다.

기존 사족보행 로봇은 한 번 충전으로 약 20km 정도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험한 곳까지는 잘 가는데, 오래는 못 간다”는 한계가 있었다.

라이보2는 여기서 발상을 조금 다르게 잡았다.

배터리만 키우는 대신, 로봇 전체에서 새는 에너지를 줄였다.


🔋 배터리 두 배라고 거리도 두 배는 아니다

라이보2가 마라톤에서 쓴 에너지는 약 1,280Wh였다.

전체 배터리 용량은 1,930Wh였으니, 풀코스를 뛴 뒤에도 __약 34%가 남은 셈__이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번 충전하면 약 65km까지 갈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배터리를 엄청 크게 달았나?” 싶을 수 있다.

근데 배터리는 많이 달수록 로봇이 무거워진다.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려고 전기를 더 쓰면, 배터리를 늘린 보람이 줄어든다. 등산 갈 때 물통을 더 챙겼더니 그 물통 무게 때문에 더 목마른 상황과 비슷하다.

라이보2는 다리를 가볍게 만들고, 관절 마찰과 충돌 손실을 줄였다.

모터와 전기회로도 전력 손실이 적게 설계했고, 모터를 세밀하게 움직이는 장치까지 직접 만들었다. 내리막에서는 다리 모터 일부를 발전기처럼 써서 에너지를 다시 활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AI가 발을 디딜 때 충격과 미끄러짐을 줄이는 쪽으로 걷는 법을 배웠다.

“빨리 뛰는 법”만 연습한 게 아니다.

덜 낭비하면서 오래 움직이는 법을 로봇 몸 전체에 넣은 거다.


🏃 마라톤 코스에서 검증한 게 꽤 크다

실험실 바닥에서 10분 잘 걷는 것과, 실제 마라톤을 4시간 넘게 달리는 건 다른 얘기다.

상주 마라톤 코스에는 낙엽 때문에 미끄러운 구간도 있었고,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었다. 라이보2는 달리는 내내 전압, 전류, 관절별 전력 소비, 온도, 배터리 상태를 기록했다.

GPS 위치와 속도, 고도 정보도 같이 남겼다.

이게 단순한 로봇 묘기 영상과 다른 지점이다.

“더 큰 배터리를 얹어서 멀리 달린 로봇이 아니라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를 실제 이동거리로 최대한 많이 바꾸도록 로봇 전체를 다시 설계한 결과”

황보제민 KAIST 교수의 설명처럼, 이 기록은 “우리 로봇이 멀리 갔다”보다 어디서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어떻게 막았는지 실제 주행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로봇도 마라톤 뒤에 데이터 일기를 썼다. 사람보다 훨씬 꼼꼼하게.


🏭 이제부터는 결승선 밖의 얘기다

라이보2는 연구팀이 직접 설계하고 수작업으로 만든 연구용 로봇이다.

한 대가 잘 달렸다고 해서 곧바로 공장과 산악 현장에 수백 대를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가 와도 버텨야 하고, 먼지가 많은 곳에서도 움직여야 한다. 충격과 진동에도 고장 나지 않아야 하고, 여러 대를 만들었을 때도 모두 비슷한 성능을 내야 한다.

연구실에서 만든 운동선수 한 명을, 매일 야근 가능한 현장 직원 수백 명으로 바꾸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라이온로보틱스는 이 기술을 산업용 사족보행 로봇으로 제품화하려고 한다. 재난·산악 지역 수색, 대형 시설 순찰과 점검처럼 충전할 곳이 마땅치 않은 현장이 우선 후보가 될 만하다.

로봇이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소식은 귀엽고 신기하다.

그런데 배터리 걱정 없이 현장을 오래 돌아다니는 로봇이 실제로 나오면, 그때부터는 꽤 실용적인 얘기가 된다.

42km를 뛴 건 기록이다.

남은 34%는, 이제 로봇이 일을 하러 갈 수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