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인력난 얘기를 보면 자꾸 공장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생산거점을 늘리면서 앞으로 직접 고용할 인력만 약 2800명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서 1800명 이상,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첨단 패키징 공장에서 약 1000명이 일할 것으로 예상한다.

숫자만 보면 “그래도 대기업이니 뽑으면 오겠지” 싶다.

근데 미국에는 지금 공장을 짓는 회사가 삼성·SK만 있는 게 아니다. TSMC, 인텔, 마이크론도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 반도체 공장 하나 생길 때마다 엔지니어 쟁탈전이 열리는 셈이다.

그런데 TSMC는 벌써 채용 문을 꽤 넓게 열어놨다.


🏭 반도체 공장은 건물 완공이 끝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기계만 들여놓으면 바로 칩이 나오는 곳이 아니다.

장비를 설치하고, 공정 조건을 맞추고, 불량을 줄이고, 생산량을 안정시키는 과정이 계속 필요하다.
여기에는 공정 엔지니어, 장비 엔지니어, 생산 데이터 분석 인력, 현장 기술자가 붙는다.

쉽게 말하면 새 식당을 열었는데 주방만 번쩍번쩍 새것인 상황과 비슷하다.
레시피를 아는 요리사도 있어야 하고, 고장 난 오븐을 고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주문이 몰려도 음식이 안 밀리게 굴릴 사람도 필요하다.

팹은 지을 수 있어도, 숙련된 반도체 인력은 공사 기간처럼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재단과 맥킨지가 분석한 전망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마이크로전자 산업은 2030년까지 최대 15만7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공학계열 졸업생 가운데 반도체 업계로 가는 비율은 약 3%라고 한다.

공장 수는 늘어나는데 신입 파이프는 가늘다.
이러면 회사들은 결국 이미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서로 데려오려 할 가능성이 크다.


🎓 TSMC는 대학 밖까지 내려갔다

TSMC는 애리조나에 짓는 첫 3개 공장에서 약 6000명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개한 미국 생산거점 직접 고용 계획을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큰 숫자다.

더 눈에 띄는 건 채용 방식이다.

TSMC는 미국 대학 채용 대상을 19곳에서 29곳으로 늘렸다. MIT, 스탠퍼드대, 퍼듀대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공대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학부·대학원생만 찾는 게 아니다.

애리조나주립대와 장비 기술자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고교 졸업자, 비전공자, 다른 산업에서 옮겨오려는 사람에게도 문을 열었다. 교육을 시키고 현장 인력으로 연결하겠다는 그림이다.

반도체 전공자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반도체에서 일할 사람을 직접 늘리겠다는 쪽에 가깝다.

인력난에서 이 방식은 꽤 무섭다.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지원자 수를 늘려버리면 경쟁의 판 자체가 달라진다.


📍 삼성은 텍사스, SK는 퍼듀대 옆에서

삼성전자도 미국 대학에서 인턴과 신입 엔지니어를 뽑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21개 대학에서 114명의 인턴을 선발했고, 신입 대상 반도체 공정·제조 교육도 운영했다.

다만 현재 채용 대상 대학 7곳 중 6곳이 텍사스에 몰려 있다.

테일러 공장이 텍사스에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출퇴근할 사람을 뽑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그래도 미국 전역 29개 대학으로 범위를 넓힌 TSMC와 비교하면, 인재를 찾는 그물망은 아직 작아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 인근의 퍼듀대와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주한미군 전역자 채용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미국 현지 전문가와 연구자들을 만나는 글로벌 포럼도 열었다.

이쪽은 이제 공장을 구축하는 단계라 TSMC와 똑같은 속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다. 삼성전자 현지 임원이 CNBC 인터뷰에서 인력 확보를 “시간과의 경쟁”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 결국 채용 공고 싸움이 아니다

반도체 인력난은 연봉을 조금 더 주면 끝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공장 장비를 바로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업종에서 온 사람이 반도체 현장에 익숙해지려면 교육 시간이 필요하다. 한 명을 뽑는 것보다 한 명이 제대로 일하게 만드는 일이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봐야 할 건 당장 몇 명을 채용했느냐만은 아닐 것 같다.

지역 대학, 전문 교육기관, 전직 희망자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느냐.
그게 몇 년 뒤 공장 가동률을 가를 수도 있다.

공장 외벽에 회사 로고를 붙이는 일은 눈에 잘 보인다.

그 안에서 장비를 돌릴 사람을 구하는 일은 잘 안 보인다.
근데 반도체 공장에서는, 어쩌면 그쪽이 더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