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재제청을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맞붙었다는 소식은 얼핏 이렇게 들린다.
“대법원장이 대통령 요구를 거부했다.”
그런데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다시 낸 설명을 보면, 적어도 공문의 도장이나 서명 같은 형식 문제를 잡은 건 아니었다.
📂 대법관은 누가 뽑는 건데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후보를 제청하고, 국회 동의를 받은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쉽게 말하면 대법원장이 “이 사람을 대법관 후보로 올리겠습니다”라고 먼저 제안하고, 국회와 대통령이 뒤의 절차를 밟는 구조다.
이번에는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 청와대가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내지 않기로 하고,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는 당시 제청 절차가 충분히 완결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반면 조 대법원장은 그 사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재제청 요청 공문에는 재제청 요청의 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재제청’이다.
이미 올린 후보를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 절차에 넘기지 않으니,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를 올리라는 뜻이다.
📂 “공문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었다
전날 조 대법원장이 헌법 제82조를 언급하면서 일이 더 꼬였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형식을 갖춘 문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대법원이 마치 재제청 요청 공문 자체에 형식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서 조 대법원장은 23일 한 발 더 설명했다.
8월 28일자 공문에 형식적 하자가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공문 안에 “왜 다시 제청해야 하는지”와 그 법적 근거가 분명히 적혀 있지 않다는 게 대법원장 쪽 주장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손 후보자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충분히 밝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언론 브리핑이나 외부 설명이 아니라, 정작 공식 문서 안에 재제청 사유가 또렷하게 있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이런 절차는 답답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누가 어떤 근거로 절차를 바꿨나”를 두고 다투게 되면, 결국 남는 건 말이 아니라 문서다.
대법원장이 공문 형식을 트집 잡은 게 아니라면, 이제 청와대가 사유와 근거를 더 구체적으로 적어 다시 보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다.
📂 더 큰 쟁점은 ‘절차에 흠결이 있었나’
청와대가 내세운 핵심 이유는 기존 제청 과정의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은 이 대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제청 과정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사유 자체를 헌법과 법률에 비춰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건 공문을 다시 쓰는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공문에 사유를 보충하면 대화의 문은 열릴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기존 제청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전제부터 동의하기 어렵다”고 한 이상, 청와대가 같은 이유만 더 길게 적는다고 바로 풀릴지도 알 수 없다.
대법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기존 후보들 가운데 다른 사람을 다시 제청할지, 대법관 후보 추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을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재제청을 할 거냐, 말 거냐’보다 먼저 이것부터 확인해야 할 상황이다.
청와대가 공식 문서에 어떤 사유를 적어 보낼지, 그리고 대법원이 그 사유를 절차 진행의 근거로 받아들일지.
📂 서로 큰말을 하는 동안 자리는 비어 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재제청 거부라며 대법원장 책임을 강하게 물었고, 야당은 사법부 압박이라고 맞섰다.
말은 벌써 헌법과 삼권분립 이야기까지 커졌다.
그런데 정작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자리는 계속 비어 있다.
조 대법원장도 대법관 공백이 길어져 국민 불편이 생기는 데 송구하다며 신속히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대법관 한 자리 인선이야말로 “누가 이겼나”로 끝낼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무엇이 절차상 문제였는지 공식 문서에 분명히 남기고, 대법원은 그 설명을 받은 뒤 어떤 길로 갈지 밝혀야 한다.
서로 상대가 헌법을 무시한다고 말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냥, 그래서 빈자리는 언제 채워지는데가 더 급하다.



